* 조체계와 조성

  중세/근대는 대개 왕정에 의한 전제정치 시대였지요. 왕은 군주이고 왕권은 중앙집권화 되었으며 절대적이었습니다. 각국의 정치경제제도는 각양각색이었고, 뒤집어서 보면 대륙마다 나라마다 각각 고유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통/통신이 발전되지 않아서 교류도 별로 없었지요.

  이때는 음악 조율법에 있어서도 피타고리안이나, 그 변형인 순정률 시대였습니다. 악기조율을 새로 하지 않고는 조옮김이나 조바꿈이 되지 않았지요. 아니, 바흐 이전에는 아예 그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하나의 음계는 하나의 고정된 주음(종지음)을 가지고 있었지요.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조성이란 개념도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음계의 제5음(so)이 딸림음이지만 예전에는 3음(mi)이 딸림음 역할을 하기도 했었지요.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왕권은 약화되고 왕정은 서서히 붕괴되어,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리 잡게 되지요. 음악에서도 때마침 평균율이 순정률을 대체하게 됩니다. 평균율이 나타난 것은 훨씬 이전이지만,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지요. 이제는 조바꿈도 조옮김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게 되고 조성개념도 완전히 정착하게 됩니다. 조성개념은 순정률의 일종을 사용하던 바흐 시대 직전에 생기기 시작했으나 바흐가 이를 집대성해서 작곡에 활용했고 그 이후에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순정률 자체의 내재적 한계와 악기의 제한 등으로 말미암아 지금처럼 완전히 구현할 수는 없었지요.


  평균율도 1옥타브를 몇 단계로 분할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세계적으로 보편화 되어있는 것은 12단계로 분할한 12음-평균율입니다. 또, 음계는 5음계나 7음계를 쓰고 있는데, 평균율 하에서의 5음계 구성음은 세계적으로 거의 공통됩니다만, 7음계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요. 7음계나 5음계는 12음-평균율 중에서 7개나 5개의 음을 뽑아서 배치한 것인데, 반음정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그 색조/느낌이 달라지며, 각 민속악은 고유의 음계를 쓰고 있지요.

  음계가 정해지면, 그 관념적 시작음을 으뜸음(주음/종지음)이라 부르고, 음악의 끝(종지음)은 으뜸음으로써 장식하게 되며, 이런 구조를 가진 음악을 넓은 의미에서 조성음악이라 합니다. 그런데 12음-평균율을 구성하고 있는 12개의 음은 모두 다 으뜸음이 될 수 있으므로, 먼저 이들의 순서를 정하고 각각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입니다. 이 이름을 음명이라 하는데, 음악인들은 묵시적 합의(관습)에 따라 12개의 순서를 [C, C#, D, D#, E, F, F#, G, G#, A, A#, B]로 정했으며, 이를 조체계라 합니다. 따라서 조성이라고 부르는 이 음악현상은 기본적으로는 음계와 조체계를 통해서 구현되지요.

  또한 실제로 음악을 연주하려면, 이 으뜸음에다 어떤 특정 음높이(음고)를 부여해야만 악기를 조율할 수 있겠고, 음계의 다른 음들도 줄줄이 따라서 고유의 음높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음높이는 관습적으로 전해져 왔고 비슷하기는 했지만 통일되지는 않고 있다가, 198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미디음악 분야에서 표준음고가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어쿠스틱 분야에서는 아직도 완전히 통일되지 않았지요.

  음계에는 으뜸음이 있지만, 이건 관념적인 것이라서 실제로는 청중이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므로, 청중이 이걸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음악적 규칙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클래식 작곡가들이 방법을 고안해낸 게 딸림음과 버금딸림음입니다. 7개의 7음계 음 중에서 딸림음과 버금딸림음은 음향물리학적으로 으뜸음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들이므로 이들을 완전협화음정이라 부르고, 이들 셋이 구성하는 화음들을 주요3화음이라 합니다. 이외에도 음계의 제7음은 으뜸음과 반음정을 이루는데, 7음이 나타나면 그 다음에 올 으뜸음을 기대하는 심리, 즉 회귀/안정을 바라는 음향심리가 발동하게 되므로 이를 이끔음이라 부르며, 제7음도 중요한 음이 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는 행정부가 있고, 그 수반은 대통령이며, 바로 밑에는 총리와, 2명의 부총리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들은 국가행정을 이끌어가는 핵심이겠지요. 옛날 왕정 같으면 왕과 영의정, 또 그 왼팔, 오른팔 격인 좌의정, 우의정에 해당할 것입니다. 또, 그들에게는 각각 대통령 비서실, 총리실, 부총리실이 딸려있어서 요인들을 보좌하게 하지요.

  음악에 있어서는 으뜸음이 왕이고, 딸림음은 총리, 이끔음도 총리 이상의 권한을 가진 부총리쯤 되며, 버금딸림음도 총리에 버금가는 부총리쯤 되지요. 이들은 또 화음을 구성해서 국가행정처럼 복잡한 다성부음악을 연출합니다.

  즉, 5도-딸림음, 4도-버금딸림음, 7도-이끔음이 1도-으뜸음을 중심으로 해서 핵심적 역할을 하게끔 만든 이론을 기능화성 및 이끔음 논리라 하고, 이에 따라 작곡된 장르를 좁은 의미의 조성음악이라 하며, 클래식이라 부르는 음악은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 재즈/락 장르도 이에 준해서 구성되므로 준조성음악이라 하는데, 클래식이 유럽 민속악이라면 재즈/락은 영미 민속악이므로, 이들은 서로 사용하는 고유 음계와 리듬이 다르고, 이외에도 규칙과 색채에서 몇 가지 차이를 보이지만, 그 이론적 근본/뿌리는 문화의 교류 특성으로 말미암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20세기에 와서는 전 세계의 왕정이 거의 붕괴되고 민주적 공화정이 수립되었지만,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게 되고, 그 중간쯤 가는 사회주의도 보이게 됩니다. 음악 같으면 온음 사이에 있는, #이나 b이 붙은 반음쯤 되겠지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가미하면 수정자본주의라 해서, 예컨대 F#, 공산주의가 사회주의를 가미하면 수정공산주의라 해서 Gb에 해당되겠지만, 이름만 달랐지(이명동음) 그게 그거라 할 수 있겠지요.

  사회주의는 봉건사회의 계급을 타파하고 평등을 외치는 사상이지요. 음악에서도 왕족/귀족의 독점물이었던 클래식 이외에 대중적인 블루스/재즈가 일어나고, 이는 또 클래식과 결합하여 팝/락 장르를 낳습니다.

  그렇지만 정치/경제 제도가 역사적 산물이듯, 음악예술도 문화적 교류의 산물이므로, 클래식이든 블루스/재즈든 그 뿌리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 어떤 우열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