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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작성자  한국기타문예원 작성일  2015.02.11 23:07 조회수  3447  추천  0
제목  3. 중세 음악(10), 4. 고딕음악(4) /3. 세속의 단성음악    
첨부파일 : f1_20160505182903.jpg
 
 
3. 세속(世俗)의 단성음악

11세기말부터 13세기에 걸쳐, 교회안에서 다성음악이 발달해가고 있을 무렵, 교회 밖에서는 중세적 붕건제도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트루바두르(troubadour)」, 「트루베르(trouveres)」, 「미네젱거(minne sänger)」 등의 기사가인(騎士歌人)의 예술이 나타났다. 이것은 세속(世俗)음악의 시작이며 「기도의 노래」인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역사상 최초의 세속적인 리트(Lied)의 예술이다. 이 세속음악은 대체로 단선율의 것으로, 다성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던 고딕(Gothic)시대로서는 진기한 일이었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에 걸친 십자군전쟁의 영향으로, 12~13세기에 발달된 세속음악은 처음에 봉건제도의 기사계급이 자기들의 교양으로 한 것이 시초이며, 이어서 시대의 조류를 타고 새로 일어난 시민계급에서 음악이 성하게 되었는데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특히 성행하였다. 한편으로는 12세기에 대학이 발생했고 당시 전형적 학생생활은 도시에서 도시로 방랑하며 곳곳의 대학을 다니는, 말하자면 보헤미안적 존재들인 일단의 학생집단이 세속음악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런 세속음악은 먼저 라틴민족들 사이에 일어났다. 8세기경부터 각지를 돌아다니던 음유시인(吟遊詩人)이 점차 확대되었는데, 이들을 프랑스에서는 8세기 경부터 「종글뢰르(jongleur)」, 영국에서는 「민스트렐(minstrel)」이라고 했다. 특히 유명한 것은 프랑스 남쪽 지방의 「투루바두르(troubadour)와 북쪽 지방의 「투르베르(trouveres)로서, 11세기경에 일어나서 12세기경에 가장 성하였다. 그들은 주로 기사(騎士)계급들로서 연애, 정치, 역사 같은 것을 내용으로 작사, 작곡한 속어(俗語)의 기사가곡(騎士歌曲)이 번성하였다. 그리고 그런 가곡들은 대개 서정적이었다. 이들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포함해서 원칙적으로는 교회선법(敎會旋法)에 의한 단성부 음악이었으나, 9세기경부터 다성부의 음악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보다 조금 늦게 13세기경에는 화려하게 출정했던 십자군의 기사들이 초라하게 돌아와, 각 지방의 후작의 궁정에 기식(寄食)을 하는 신세가 되면서부터, 또 다시 독일에 새로운 부류의 음악이 생겼다. 예술적으로 교양이 높은 이 기사들은 각기 자기 상전(上典)과 고을의 명예를 걸고 노래자랑을 했는데, 이 사람들을 민네젱거(minne sänger)라 불렀다. 다소 종교적인 색채를 띠기는 했으나, 그들은 열심히 연애 시(詩)를 써서 거기에 곡(曲)을 붙이고 또 그것을 노래했다.

얼마 후 14세기가 되면서 이러한 음악이 시민계급 사이에 확대되어 명가수라는 뜻의 마이스터쟁거(Meistersänger)가 되었는데, 이는 기사도(騎士道)가 쇠퇴하고 서민계급이 일으킨 음악 운동인 것이다. 민네젱거는 쇠퇴하고, 마이스터쟁거가 등장하여서 16세기경까지 계속된다. 십자군의 덕택으로 동서 교역에서 부자가 된 시민들과 상공업자들은 의식주에 불만이 없어짐에 따라서, 다투어 노래 경연대회를 열고 참석하였다. 이 운동으로 음악을 널리 보급하고 일반에게 전파한 역할은 대단히 큰 것이었다.

한편으로 1000년경부터 1400년대까지 중세 전성기에는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 같은 대성당들이 전 유럽에서 지어졌고 대학들도 많이 생겨났다. 성당의 수사(修士)들은 점차 교회 밖으로 여행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학생들 역시 여러 대학을 옮겨 다니며 공부하는 경우도 많아졌는데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요인과 교회음악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어울려 새로운 세속음악이 생겨났다. 이 음악들은 12세기와 13세기 동안 많은 지역을 여행했던 음유시인(吟遊詩人)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들이 노래한 것은 주로 고귀한 귀족여인에 대한 사랑이나 목동의 노래 등이었다. 이와 같은 세속적인 노래가 많이 나오게 된 것은 교황의 권위가 중세 말기로 갈수록 서서히 약화되면서 각각의 성을 지배하던 왕과 귀족들의 권세가 높아진 데서 주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4세기 무렵부터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영주나 기사 등 귀족들이 좋아하는 연회를 위한 무곡(舞曲)이나 사랑 노래가 두드러지게 증가하게 되었는데, 당시의 음악은 확실히 이전 시대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세속적인 음악이 증가한 것과 더불어 주로 3박자 중심으로 불리던 노래들에 이어 처음으로 2박자의 노래가 나타났는데, 2박자의 노래가 증가하면서 음악의 속도감이 빨라졌고 리듬도 아주 복잡해졌다. 이처럼 평화롭고 온건한 성가의 느낌과는 차이가 있는 세속적인 음악들이 빠른 속도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중세 후기 음악의 특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고딕음악 4:낭만을 노래하는 기사들. 세속의 단성음악:사단법인 한국기타문예원 음악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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