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악과 서양음악에 관한 토론

[Solea]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한 이유와 목적, 즉,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는 목적과 논리, 그들의 논리 분명히 있습니다.

"역설적으로는, 그들의 고유 음계를 찾아주고, 고유 리듬을 찾아주고, 그래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것은, 그들이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저항과 인내로 일관하면서 간직해온 것들을 찾아주는 것은 차라리 이론가들의 몫일 것입니다"

……. 우리나라의 문화와 정체성을 왜 일본이 찾아줘야 했습니까?

그 당시 세계적 관점에서 조선은 미개한 국가였는지도 모릅니다. 조선보다 앞서 개화(?)된 일본사람들의 눈에는 진짜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을 국제화, 세계화, "표준화" 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입니다.

우리 고유의 문화가.. 일본이 있었기에 비로소 지금 꽃피울 수 있다는 논리... 일제 강점의 구차한 논리입니다. 그들만의... 그런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논리같지 않은 논리에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습니다.

아프리카 토인들의 음악은, 그리고 집시의 음악은... 그대로 놓아둡시다.

그 음악들에서 혹시 관심있는, 혹시 재미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만 따서 째즈던 뭐던 만듭시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그대로 둡시다. 그것들은 인류의 가장 소중한 자산들입니다.

"클래식은 모든 음악의 뿌리입니다. 만일 클래식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다면, 이에 따른 일련의 작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다른 민속악들은 모두 다 지금의 모습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클래식(?)이라는 도구가 없었더라면 오히려 각국의 민속악은 그 원형을 더욱 잘 보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클래식(?)보다 민속악이 시대적으로 더 앞선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가야금의 음악을 서양 오선보로 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본음이야 표현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만든 가야금 악보를 피아노로 쳐 보십시오. 아마 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음악에는 음, 리듬, 가락, 화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야금의 세계화는 절대로 필요 없습니다. 세계인들에게 가야금 자체를 보급하고 그 연주법을 보급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우리의 그 멋드러진 가야금 선율은 현재의 어떠한 선진 클래식 기법으로도 절대 표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일을 억지로 할 때에 오히려 우리의 가야금 음악은 죽고 맙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여 우리 조선의 혼을 말살하듯이...

……. 그래서 우리 민족은 끝까지 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2005/10/17  

  
[gmland]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문제와,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서 발전시키는 것과는 별개 차원의 같은 문제이겠지요.

그런 식의 논리라면, 한국의 혼을 클래식에 담은 윤이상, 안익태, 또 최근에 쇤베르크 상을 받은 진은숙 등은 민족문화를 팔아먹은 사람들밖엔 안 되겠지요.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는 다르겠지요. 외적도 무섭지만 내부의 국수주의는 더 경계해야 할 것이 아닐까요?

특히 음악은 구체적으로 논하는 게 좋습니다. 추상적인 개념들을 끌고 오는 것 보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토론이 성립되려면 가야금 국악을 하나 올려놓고 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걸 세계 만국의 공통어법인 5선기보법으로 표기가 되는지 안 되는지... 어떤 이점이 있고, 어떤 단점이 있는지…….

가야금 곡을 클래식처럼 편곡했을 때 과연 우리 민족의 혼, 우리의 정체성이 훼손되는지, 안 되는지……. 또, 민족을 알리는 것인지, 손해가 날 일인지, 지금보다 국악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질는지, 더 줄어들는지... 만일 늘어난다면, 그래도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면, 다만 溫故而知新 차원이라면, 그건 우리 문화를 오히려 전승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지요.

지금이야 일부 국악인들만이 지키고 있는 것인데, 그나마 정부에서 [무형문화재]다 뭐다 해서 지원하는 통에 보존되고 있는 것인데, 그러나 전 국민이 참여하지 않는 이 모양새가 과연 전승/보존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히려 필자가 주장하는 부분이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닐는지? 2005/10/17  
  
[gmland] 여러 이야기들을 오해 없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만…….

실제로 가야금을 배우면서 우리 고유의 악보에 나타난 것과 한번 비교해 보셨는지요.

우리 국악은 니그로-블루스와 마찬가지로, 원래부터 평균율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음계가 아닙니다. 많은 미분음이 있어서 평균율로는 완전히 표기되지 않습니다. 이는 인도, 중국, 중동 음악도 마찬가지이고, 여타 민속악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기타연주에 있어서도 블루스의 미분음인 Blue-note는 아티큐레이션으로 보완하는 것이고, 주법도 초킹으로 연주하는 것이지요.

우리 국악이나 다른 민속악을 완벽하게 표시하려면, 아마도 64음계쯤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니, 그래도 경과적 미분음은 표현 불가능일 것입니다. 그런데 음향물리학자, 음향심리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렇게 많은 음을 가진 음계는 일반인의 청각/지각 능력을 넘어선답니다.

하기야 고대 그리스의 16음계, 24음계도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지요. 실제로 최근에는 순정률에 기반을 둔 64음계가 개발되어서 선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국악을 표시하는 악보는 일종의 탭-악보에 가까운 것인데, 이것마저도 우리 가야금 선율을 다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즉흥연주에 의존하고, 선생으로부터의 감각적 지도와 청음에 의존해서 배우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말한다면, 유감스럽게도 우리 기보체계는 유럽의 5선기보법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점은 둘 다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5선기보법이 훨씬 더 융통성/포용력이 크지요. 이미 국제화 되어있다는 장점도 있고... 2005/10/17  
  
[gmland]  우리 한글만 해도 그렇습니다. 명사 기준으로 사전을 비교해보면, 영어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마도 1/5 정도에 그칠 것입니다. 반면에 형용사 계통은 훨씬 더 많지요.

그래서 외래어를 많이 씁니다. 특히 전문용어 부문에서는 토종 한국말을 쓰려고 해도 단어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래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자]이겠지요. [중국어]를 뜻하는 [한문]과는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한자]는 외래어인 우리말이지요. 외래어에는 여타 외국어에서 온 것도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외래어를 쓴다고 해서 한글의 정체성이나 민족주의가 손상되지 않지 않습니까, 오히려 우리 한글을 더 풍부하게 살찌우는 것이겠지요.

외래어로 된 명사들이, 세월이 흘러서 자연스럽게 순수 우리말로 대체되면, 그때는 다 버려도 되겠지요. 그렇지만 당분간은 과도기적으로 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정부가 한글학자들을 지원해서 우리말을 추가로 많이 만들든지... 그런데 이런데 관심 있는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은 아직 못 봤습니다.

국악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외국에도 많이 알려져서 저변이 확대되면, 자연히 여건이 조성되어서 언젠가는 우리 고유의 기보법이 탄생하겠지요. 고차원 적인 것이... 하지만 전래된 우리 기보법은 탭악보에 불과합니다.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지요. 2005/10/17  
  
[gmland] 옛날이야기 한 토막…….

1970년대에 장충동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국악 알리기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법 넓은 소극장 안에서 볼 수 있는 음악인은 신중현, 김민기, 송창식 정도였습니다. 불과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만 있었지요. 국악인들이 여러 가지를 가르치려 했지만 듣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물며 일반인이야…….

국악을 화제로 올리면 모든 한국인들이 나섭니다. 자기 것이니까...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이니까…….

그런데 막상 연구하고 배우는 사람, 국악 듣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실제로 조선 기보법을 보면서 고민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 판에도 보존/전승이라는 말이 나올까요... 2005/10/17  
  
하나 더 이야기 할까요? 꺼내면 수없이 많습니다만... 밤새워 소주 마시면서 할 만큼 많이 있지요.

여러분들, 피날레 고급기능으로써 24음계 악보 그려본 적 있는지요?

5선보를 세로로 2개 나열한 후, - 피아노의 2단 보표처럼 말입니다. - 바짝 붙여서 24음계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주어져 있습니다. 피날레 제작자들이 여러 민속악을 염두에 두고 부가해놓은 기능이지요.

가야금 악보를 그리면 대부분의 음들을 표시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1/4 음정 단위로 기록되지요. 더 이상 미분음은 만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음악 전문가도 식별이 어렵지요. 24음계를 인식할 수 있는 청음 능력만 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아마, 경력 30년 이상의 프로 음악인 100명을 세워놓고 실험해도 답이 안 나올 것입니다.

이때, 경과적 미분음까지는 기보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예컨대 기타 연주에 있어서 슬라이딩/초킹 주법을 사용한 경우에, 2개의 음 사이에 형성되는 수많은 경과음을 악보에다 체크할 필요성이 있습니까?

우리 고유 기보법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음악 자체를 표현한다기보다, 주법을 기록하는 탭악보 정도인 것이고, 음고를 나타낼 수 있는 장치는 완전치 못합니다. 당연히 가야금이 만드는 미분음들을 표기할 수 없습니다. 5선보보다 훨씬 못하지요.

더구나 확장성도 없어서, 전술한 바와 같이 2단 보표를 사용해서 1/4음정 단위로 기록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냅니다.

실제로 국악 악보를 사용해봐야 압니다. 그리고 5선보도 깊이 연구해서 서로 비교해봐야 압니다. 내 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국수주의자들이지요. 걸핏하면 민족감정에 호소하곤 합니다. 일부 국악인들이 그렇게 선전하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과연 5선기보법을 깊이 공부해봤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아니면 더 깊은 독자적 기보법을 연구해 봤는지요?

예술은 민족 그 자체입니다. 제 나라 제 민족 사랑하지 않는 음악인이 있을까요? 무엇을 도구로 쓰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음악 속에 있는 민족혼이지요. 플라멩코처럼... 플라멩코의 도구들도 모조리 그들 고유의 것은 아닙니다. 가장 근본적인 주 리듬과 주음계만 그러하지요. 그나마 정복자들이 뺏어가서는 이름마저도 파묻힌 상태입니다.

국악인들은 더 이상 민족/보호주의적 여론 편승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더 넓게 더 깊이 연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진정 국악을 전승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대원군은 애국자였고, 개혁 정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의 오판으로 나라를 빼앗기는데 1등 공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수주의는 쇄국주의를 불러오기 쉽습니다. 지하에 있는 대원군이 얼마나 억울할까요. 그렇지만 결과가 그렇게 나타나 버린 것을 어찌합니까. 그 통에 이 땅의 역사가 어찌 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고통을 받았는데요.

일본은 명치유신 이래로 선진문물을 받아들였고, 지금도,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1등 국가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본의 혼을 뺏겼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우를 범해서는 안 되지요. 절대로 안 됩니다. 2005/10/18  
  
[hdinky] Solea님, [가야금의 세계화는 절대로 필요 없습니다]라고 하시는데, 무슨 근거로 절대로 필요 없다는 것입니까? [원형은 그대로 내버려 둔다]라는 부분도 말이 안 되는데... 이론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그것이 원형 그대로 된다는 말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론이 정립되기 전에 고대 기원전 몇천년 전의 음악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런 음악들이 지금 있습니까? 플라멩코 원형은 내버려 둔다는 말도 말이 안 되는데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 있으면 원형이 훼손되는 것인지? 논리 같지 않은 논리라는 말도 어이없습니다. Solea님은 처음에 플라멩코 관련해서 프리지언 모드니 이런 등등 이론적인 말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이론이 무슨 소용이냐 이런 식으로 나오시는데... 님이 말장난 한다고 생각 안하십니까? 2005/10/18  

[Solea] 허허, 참으로 단순하시구려. 과학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술을 알고 음악을 아는 사람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가야금의 세계화는 절대 필요 없다“라는 말을 그렇게 해석하십니까? 일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 먹겠다“라고 했다고 해서 그러면 하야하라고 떼를 쓰던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하하하. ‘못해 먹겠으면 물러나라’ 맞긴 맞는 말입니다. 강조나 과장의 어법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시다니...

그러나! 위의 말은 단순한 과장만은 아닙니다. ‘세계화‘ 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면 그렇습니다. 제가 세계화라는 용어를 잘 못 썼을 수도 있으나, 이전에도 제가 일관되게 말하는 것과 같이 규격화, 표준화를 통한 세계화라는 의미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세계인의 소위 ’보편적 관습‘이라는 기준으로 표준화시키는 세계화를 말합니다.

우리가 만든 공산품을 세계로 수출할 때는 그야말로 보편적 관습에 따른 표준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나 음악은 아닙니다. 보편적 관습, 즉 세계인이 다 알아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관습에 끼워 맞춰지면 그것은 더 이상 국악이 아닙니다. 저는 초중고 음악 시간에 서양 기보법으로 국악을 배웠습니다. 아리랑, 천안삼거리 등의 계명 외우고, 장구가 아닌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결국 국악의 알맹이는 모르고 껍데기만 배운 꼴이 되었지요. 제 나이 또래의 대부분 사람들이 국악을 모르고 또한 잊어가는 이유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의 국악 교육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서양식 악보에 의존한 국악보다는 체험학습에 의한 실체적 교육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물론 음악 선생님들을 위한 국악 교수방법론 또한 연구 발전되고 있고요. 일전에 초등학교 교사인 친지의 부탁을 받아 국악 놀이 도구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한때 크게 유행했던 DDR 아시지요? DDR의 구동 음악을 국악으로 하여, 국악 장단에 맞추어 발을 구를 수 있게 프로그램한 것입니다. 세마치나 자진모리, 굿거리 등 국악의 장단에 맞추어 한참 뛰다 보면 저절로 그 리듬이 몸에 배게 되는 것이지요.

플라멩코나 국악을 음악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물론 좋습니다. 그래서 그 음악들에 들어 있는 독창성, 예술성을 발견하여 기존의 ‘보편적’ 음악에 접목한 후 세계로 보급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음악 자체를 표준화 하려 하지는 마십시오. 혹시 가야금과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식으로 세계화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오케스트라와 맞추기 위해 가야금 음정이나 탄주법을 조정하려 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가야금이 아닙니다. 단지 가야금 모습을 한 악기일 뿐입니다.

옛 것이나 전통 문화는 그대로 놓아두어야 합니다. 오히려 그대로 보존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이지요. 원형은 원형대로 놓아둔 채 현대화, 세계화 하자는 말입니다. 고려청자는 그대로 보존, 아니 오히려 똑같이 재현하는 연구에 노력해야 합니다. 고려청자를 세계인의 보편적 취향에 맞게 변형할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단지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색이나 문양을 현대화, 세계화시켜 여러 분야의 응용할 필요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며칠 전 TV 프로 ‘스폰지’에 “( )를 기록하는 악보도 있다“라는 문제가 나왔더군요. 답은 무용입니다. 서양 발레뿐만 아니라 모든 민속 무용의 동작까지 기록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정작 무용하는 현장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 모양입디다. 비디오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에는 혹시 유용하게 쓰였는지도 모릅니다. 복잡한 그 무용보를 보니까 앞으로 로봇 개발에 활용이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은 들었습니다. 무용보든 악보든 그것들이 기록하는 것은 오직 껍데기일 뿐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전 음악이론 하나도 모릅니다(이 말도 물론 과장, 강조어법입니다). 플라멩코의 프리지안 모드 어쩌구 한 것은 그저 그런 얘기를 들었을 뿐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제가 알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십니까? 음악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프리지안 모드라는 말만 알 뿐, 프리지안 모드로 된 음악임을 구별할 줄도 모르고, 그러한 음악의 독특한 느낌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공하는 공학분야를 연구하듯 저 또한 음악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면 그 구조나 원리를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음, 또는 음악 자체를 귀로, 몸으로 체득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제가 전문 음악가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예술을, 음악을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일 당연히 필요합니다. 제가 못하기 때문에 저를 위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기문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2005/10/18  
  
[gmland] 그런 의미라면, Solea님의 생각이 백번 지당하지요. 우리 것을 왜 서양음악에다 꿰맞춥니까.

그러나 이론적 분석을 위한 도구로서 화성법/대위법을 쓴다든지, 더 발전된 기보법인 5선기보법을 쓴다든지 하는 것은 알맹이와 전혀 관계없는 것이고, 오히려 국악을 더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지요.

우리 국악은 첫째, 리듬이 세계적으로도 다양합니다만 이를 담을 그릇이 연구/개발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나는 국악에도 고유의 대위법이 있다고 봅니다만, - 이는 물론 서양 대위법과는 다릅니다. - 그런데 국악인들이 별로 연구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셋째, 국악의 관행도 애드립(즉흥연주)입니다만, - 이는 재즈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고, 클래식의 바로크 시대보다도 앞설지 모릅니다. - 국악인들이 별반 연구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넷째, 국악은 평균율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음계를 구성하는 각 음의 주파수가 통계적으로 산출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자료와 교과서에는 평균율 개념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예컨대 평조는 니그로-메이저-펜타와 같고, 계면조는 니그로-마이너-펜타와 같은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는 어처구니없는 것으로서 웃지 못 할 희극입니다. 그러고도 국악이 어쩌고저쩌고 할 수 있을까요. - 기보법의 우열을 따지기 이전에…….

다섯째, 국악은 알려진 것과 같이 단성음악이 아닙니다. 다만 다성부음악이 아닐 뿐이지요. 이는 재즈처럼 클래식 화성이론을 받아들여서 다성부음악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원형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보존하고 가꾸는 것이며, 젊은이들이 국악에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민족주의로 무장하고 억지로 듣는 국악이 아니라, 클래식이나 재즈, 플라멩코처럼 현대적 경쟁력을 갖춘 멋진 음악으로 거듭 나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은 국수주의에 빠져서 선진 도구를 학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뜻 있는 음대교수들의 공통된 생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판에서는 국악의 전승이고 발전이고 간에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전문적으로 따져야 할 일이지, 피상적으로, 또는 비전문가의 말이나, 몇몇 국수적 국악인의 말에만 귀를 기울일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디테일을 가지고 토론해야 상호간에 오해가 없을 것입니다. 2005/10/18  
  
[Solea] 그렇습니다. 국악인들이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나름대로의 틀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단지 선진도구(?)인 클래식의 틀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틀에 억지로 꿰어 맞추다가는 결국 많은 것을 잃고 맙니다.

물론 국악을 째즈처럼 진화 발전시키면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국악의 멋이 스며있는 새롭고 현대적인 장르가 탄생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국악 그 자체를 손상시켜서는 안됩니다. 클래식 이론을 원용할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국악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다면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 국악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화성이고 음계이며 리듬이 되겠지요. 또한 그것을 오선지에 기록할 수 없다면 새로운 기보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사람들을 위한 표준화의 장점보다 잃는 것이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론에 약한 국악인들보다는 gmland님과 같은 분이 연구하시는 것이 어쩌면 바람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래식 이론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해서 은연 중에 그 내면을 생략하거나 억지로 꿰맞추지만 않는다면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는 차라리 gmland님께 국악의 숨결이 살아있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기타로 연주할 수 있는 국악이 나온다면 저희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2005/10/18  
  
[gmland] 결론적으로는 대동소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먼 길을 돌아온 감이 있군요. 마주보고 하는 대화가 아닌 한, 이런 인터넷 토론이 어렵다는 것을 또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다들 백전노장(?)이라고 자부하는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역시 한 가지 느낀 것은, 어떤 사안의 기초적 발상에 있어서, 너무나 당연하고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에 언급을 피하고, - 만일 언급한다면 상대방을 낮춰 본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으므로, - 곧 바로 주제의 핵심을 다루는 경우에는 결국 오해가 야기되기 쉽다는 점...

즉, 기초사항을 언급하고 넘어가자니 시간낭비인데다가, 상대방 수준을 모르니 크게 결례가 될 수도 있고, 안 하고 바로 핵심을 건들자니 오해가 야기될 수도 있고...

Solea님의 경우에는...

공대 교수라 하셔서 예의상, 기초사항에 대한 상호 관점의 조정을 전부 생략하고 바로 토론에 돌입했는데, 한 가지 필자가 간과한 것은 역시 음악이론 연구전문은 아니라는 점... 물론 깊은 조예가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따라서 여러 오해가 야기된 것 같습니다.

국악에 대한 손상을 우려하시는 것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지만 기우일 뿐입니다.

클래식 이론이든, 재즈이론이든, 예컨대 5선기보법이든, 평균율 조율법이든, 이는 1차적으로는 분석도구요, 2차적으로는 창조에 쓰이는 틀/그릇에 불과한 것이지, 이들 선진 도구를 사용했다고 해서 국악의 알맹이나 한국의 혼이 손상을 받는다는 것은 차원의 혼동일 뿐이지요. 그러나 깊은 연구와 경험을 통하지 않고는 얼마든지 그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그런 부분은, 음악 전문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것이라서 언급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첫째, 민족문화를 전승하는 게 아니라 팔아먹는 것이라 할 수도 있으므로 민족적 저항이 일어나서 성공할 수도 없을 뿐더러,

둘째, 외국인들의 기호도 감안한다 함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그들이 해석할 수 있는 음악적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고, 국제화/표준화 된 규칙을 지켜서 배려함과 동시에 보편타당성을 얻어야만 성공한다는 뜻이지, 만일 그 내용물이 한국 고유의 것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면, 즉 국악 자체를 손상시킨 것이라면, 정반대로 어떤 외국인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므로, 만일 오판을 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이는 순수예술, 문화적 홍보를 떠나서 상업적으로도 실패할 것이므로 국익에도 전혀 보탬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국악에 관한 것은, 국악인 스스로의 자각에 따른 의지에 의해 상호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간의 연구 결과마저도 발표하기 어려운 것이며, 또한 극한까지의 연구도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관행에 대한 조사와 통계 같은 것도 필요하니까요……. 결국, 그걸 연구할만한 능력이나 투지/동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칫하면 집안싸움이나 일으키는 격이 되고 말지요.

언젠가 뜻있는 젊은 국악인들이 같이 연구해보자고 제안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 할까……. 2005/10/18  
  
[Solea]  저도 제 생각이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과거에 국악인들이 무지했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저희들은 음악시간에 국악을 엉터리로 배웠지요. 단순히 오선악보에 계명만 표시하면 그게 전부였고, 우리들은 그저 보통 가곡 배우듯이 계명 외우고,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뿐이었습니다. 아마 음악 교과서 편찬진들이 전부 서양음악 전공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당시 국악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보잘것 없었읍니다. 그 때 서양음악 전공한 편찬위원들 중 국악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겠습니까? 그저 편하게 오선지에 계명만 채워 넣으면 다 되는 줄 알았겠지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만 봐도 국악의 비중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오선보가 아닌 다른 형태의 악보를 도입하려는 노력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겠지요. 편리하다고 해서 그저 보편적인 서양식 기보법으로 국악을 가르칠려는 안이함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다행스럽습니다. 2005/10/19  
  
[gmland] 정확한 지적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국악인들이 힘도 없었을 뿐더러, 현대 이론에 약해서 저술을 할 만한 능력이 없었지요. 그러다보니 국악 국자로 모르는 서양음악 전공 이론가들이 책을 써서 그 모양이 된 것이지요.

그 상황은 지금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는데, 국악을 도외시하는 서양음악 전공 이론가들의 안이한 자세도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제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국악인들도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국악 계통에서 전승되는 기보법은 일종의 탭악보라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건 음악 자체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단지 연주용일 뿐이거든요.

기보법은 24음-평균율 방식에 의한 2단-5선기보법 등을 개발한다든지, 뭔가 조치를 강구해야만 국악에 발전이 옵니다. 억지 춘향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