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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이론
작성자  한국기타문예원 작성일  2015.02.06 22:48 조회수  3643  추천  0
제목  1. 플라멩코 철학 ; Charles H. Keyser, Jr.    
 
1. 플라멩코 분석

이 글은 1993년에 [Charles H. Keyser, Jr.]가 집필한 [Introduction to Flamenco: Rhythmic Foundation and Accompaniment](The Compas Analysis.pdf)의 서론 부분을 필자가 번역한 것입니다. - 원문은 뒷부분에 첨부하였으며, 원문이 포함된 자료는 [Flamenco_Lesson.zip] 속에 있습니다.

[Charles H. Keyser, Jr.]의 저서/논문들은 상당한 분량이며, 이를 대충 훑어 본 바, 필자가 지금까지 봤던 플라멩코 자료 중에서는 가장 잘 분석된 것 중에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Solea님이 이미 설명하신대로, 저자인 Keyser는 이 자료에서, 플라멩코를 음계, 화음, 리듬 부문으로 나누어서 분석한 후, 기본적인 기타주법을 별도로 강의하고 있으며, 그 접근방법은 다분히 논리/수학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Keyser는 - Keyser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료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 음계/화음 부문에서 플라멩코의 기본을 Phrygian으로 보고 있는데,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이는 근본적인 큰 오류로 보입니다. 플라멩코의 기본음계를 Phrygian으로 보게 되면 그 으뜸화음이 minor chord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플라멩코 장르의 실제 음악에 있어서 그 으뜸화음이 장3화음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 플라멩코 음악의 여러 세부 장르에는 장음계/단음계의 구별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이는 재즈처럼 부분/구간 조성에 있어서는 조성이 형성되지만, 전체적으로는 장조/단조를 구별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저자인 Keyser는 이에 대해서, 이를 플라멩코 예술인들의 즉흥적 자유분방함에서 찾고 있으며, 이를 기존 음악질서에 대한 예외적/창의적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반론이 있으며, 이는, - 아직도 거의 규명되지 않은 - 7음계적 [Gypsy disjunct mode]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플라멩코는 근본적으로는 집시 고유 음계인 Gypsy tetrachord에 근거하고 있고, Phrygian 등의 4선법을 선법전환 방식으로 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4선법의 병용은 결국 클래식 표준음계도 사용하고 있음을 말하는 셈이 되고, 이렇게 이론을 구성할 때, 플라멩코가 그들 고유의 집시음계, 고유의 악식과 리듬을 사용하고 있음을 뒷받침하게 되어 집시 민족의 정체성을 손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신의 것은 신에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한편, 플라멩코의 기본음계를 Phrygian으로 보게 되면 그 화음분석도 많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이 역시 부자연스러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오히려 이를 Gypsy mode 및 선법전환으로 본다면 예외는 사라지게 됩니다. 주음계와 보조음계 간의 선법전환은 다른 장르인 클래식이나 재즈에서도 일반화 되어있는 것이므로, 문화/장르의 교류 속성에서 볼 때, 이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Keyser의 분석은 몹시 훌륭하고 선구적임에도 불구하고, 플라멩코 리듬에 관련된 현대적 박자표의 구성이라든지, 플라멩코 고유 악식과의 연결에 있어서는 역시 근본적인 반론의 여지가 상당합니다.

플라멩코에 관해서, 우선 Keyser의 분석이론을 번역/설명함에 따라 이를 소개한 후, 이어서 이에 대한 필자의 비판을 차례대로 연재/서술할까 합니다. 이는 여러 플라멩코 애호가들이 플라멩코를 깊이 이해하고 보다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래는 [Charles H. Keyser, Jr.]가 집필한 [Introduction to Flamenco: Rhythmic Foundation and Accompaniment](The Compas Analysis.pdf)의 서론 부분을 필자가 번역한 것입니다.


* 플라멩코 철학 - Charles H. Keyser, Jr. (1993)

내 견해에 의하면 플라멩코는 인간의 실존적 환경에 대한 강렬한 의지의 예술적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은 어떤 형식으로부터 뭔가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고, (플라멩코는) 우리 중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며, 요컨대 부당한 인간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더 이상 고고한 존재가 있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플라멩코의 진실은,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고,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플라멩코는 각 집시 남녀에게 주어진 기본적 책무이며, 스스로 초래한 용기 있는 소외 및 존엄과 유머로 이루어진 형식, 노력으로써 다른 것을 이겨내는 형식으로서 가장 정직한 예술 형태인 것입니다.

플라멩코의 저변에는, 그들의 삶에 주어진 죽음에 대한 어떤 인식이 항시 깔려 있으며, 이는 그들의 삶 그 자체요 삶의 의미인 것으로서, 여로의 결과로서의 기본적인 죽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버려진 땅에서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도시의 어떤 특정 구역에서 총 맞아 죽어가는 그들의 아이들에 대한 비극적 참상을 보는 눈에도 배어있어서, 여정의 매 위치마다, 매 순간마다, 각자의 삶에 점철된 가치로 의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한편 집시 예술가들의 그 강렬한 표현의 원동력이기도 하며, 이러한 의식은, 플라멩코 깐떼의 요람으로 불리는 세비야 주변의 Moron del la Frontera, Lebrija 등, 작은 마을들의 gitanos에게서 분명히 찾을 수 있는 것이고, 그들 예술가 집단의 통념으로서 그들의 예술 속에 자리매김 되어있는 것입니다.

플라멩코는 성숙한 예술이요, 철학입니다. [신이 죽었다면 무엇이든 허용된다.] 라는 금언은 세속적 인본주의, 플라멩코에도 적용되는 듯합니다. 삶은 평범하다는 것을, 그러나 인간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애정과 긍휼로써 바라본다면 말입니다. 육체적 생존을 위한 투쟁, 그리고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은, 기술적/사회적으로 진보된 문명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반 와 닿지 않는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종교니, 국적이니, 욕심이니, 재래의 이러한 의미 있는 것들은 이미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플라멩코는 그들만의 정수로서, 현대적 감각으로는 다소 먼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필자가 알아차린 때는 60년대, 70년대 초반입니다. 확실히, 그들에게 종교는 부적절한 것이었습니다. 프랑코 총통의 강제에 의한 시절을 뺀다면 말입니다. 집시는 원래 인도에서 왔고, 그들은 카톨릭적 전통과는 완전히 다른 지적 유산을 가지고 왔습니다. 따라서 플라멩코는 그들 종족의 정체성이요, 자손만대로 전승되고 보존되는 매우 진지한 의식적 예술로서, 언제나 그들의 중심에 서 있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플라멩코를 이루는 음악과 춤, 그리고 노래는, 바로 세속에 있어서의 그들 종교인 것입니다.

플라멩코는 절제 없는 예술이 아닙니다. 예술적 충족을 위해 엄격한 기능적 훈련을 요구하며, 할머니가 리듬을 놓친 손자에게 [fuera compas, nino] 라고 외치면서 꾸지람 하듯, 완전히 될 때까지의 반복훈련을 요구합니다. Moron에서는 플라멩코 노래에 관해 이러한 광경을 직접 볼 수 있는데, 어린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깐떼 존도]의 주변에 둘러 앉아 있습니다. 노래를 통해서, 그들은 일찌감치 (집시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의식화 되며, [깐떼]에는 그 전말이 숨어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또한 그들의 부모가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문제를 풀어주는 해법이 되며, 어린이들은 이제부터 개척해야 할 삶의 의미와 자연스럽게 죽음을 대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플라멩코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남녀 양성의 참여가 그들의 예술을 진지하게 해석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만일 이것이 플라멩코라는 인식이 없는 한, 종종 산만하게 보일 수 있는, 그러나 실제로는 매우 매력적인 광경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녀 각각의 배역은 그들에게 주어진 열악한 환경 아래에서 그들의 존엄성을 원숙하게 표현하려는 실존주의적 생각인 것이며, 가장 매력적인 방식이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용기 있는 표현으로서, 존재 의식이라는 철학적 산물이요, 한편으로는 고도의 기능을 요하는 예술 형태로서, 기본기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숙련에 의해 존재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플라멩코 예술인은 매일 같이 기능훈련에 임하며, 예술을 해석하고 이에 의미 있는 즉흥성을 부여할 수 있는 완벽한 기술을 위해 세월에 구애 받지 않고 훈련을 감행하는데, 이는 점점 늙어간다는 사실, 또는 생존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용기는, 위대한 플라멩코 예술가에 의해 종종 유머러스하게 풍자되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공허감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또한 그들의 일상에 점철되어 있는 불공정한 환경에 대한 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인간 존재에 대한 부당성마저도 때로는 조크로 흡수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공연 예술가들은 예리한 의식으로 깨어있으며, [죽음마저도 덧없는 삶의 연장일진대, 하물며 어떤 의미 있는 표현이 영원한 의미를 지닐 것인가?] (라는 의문에 젖어있는 듯합니다.) 뭔가를 산출해야 하는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그들 예술의 정수는 자생적 구성에 의존하며, 물질적 풍요의 획득보다는 집시 집단의 예술적 교감에 더욱 더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플라멩코는 용기의 예술이요, 인간 존엄이며, 실재하는 혼돈에 직면한 유머요, 그들만의 관습화 된 신앙세계 속에서 자유로이 인간 가치를 탐구하는 경전이요, 그러한 가치들의 중요성을 표현하는 예술로서 집시 사회에 정의된 개념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만으로도, 플라멩코는 그 자체로서 자명한 규칙을 가진 인간성의 형식인 것입니다.

플라멩코여 거기 그대로 있으라. 이제 곧 그대들의 시대가 다가오리니...

- Keyser.


[역자 후기]

플라멩코는 접근하기에 용이하지 않은 장르, 아니 매우 난해한 장르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 내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위 Keyser의 글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집시들의 의도된 저항/반발과 유머, 이에 따른 폐쇄성, 그들만의 악식과 리듬, 그들만의 음계와 화음 사용관행 등이 접근을 어렵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Keyser는 집시와 플라멩코를 극찬하고 존중하면서도, 이를 현대적 분석도구로써 잘 해부하고 있습니다. 집시음악이 독특하고 폐쇄적인 것이라 함은, 그렇다고 해서 플라멩코의 내용을 구성하는 악식, 음계, 화음, 리듬 등이 그들만의 고유의 것은 아닌 것이고, 이를 근대/현대적 표준 도구로써 완벽하게 표시/표현할 수 없는 것도 아닌 것이며, 다만 이들 구성요소를 어떻게 조합하고, 어떻게 사용/진행하며, 어떻게 변형시켰고, 어떻게 요리했는가 하는 방식/형태가 집시 고유의 것이며, 그 보존/전승 방법도 고유의 방식을 사용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앞으로 현대적 도구로써 하나하나 분석해볼까 합니다.

Keyser의 플라멩코에 대한 서술, 분석에는 [스페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플라멩코가 스페인 내의 박해 받아온 소수민족, 바로 인도에 기원을 둔 집시라는 종족의 고유 민속악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서, 스페인의 다른 음악들과 구별되며, 어떤 의미에서는 압제자인 스페인과 무관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플라멩코의 현주소는 박해 받던 흑인노예들의 음악, 즉 블루스/재즈의 성장과정과 유사합니다. 실제로 선배 격인 블루스/재즈는 라틴음악과 플라멩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에 대한 견해는 대부분 학자들의 공통적 시각인 것 같습니다.

플라멩코는 - 집시들의 희망과는 관계없이 - 머지않아 또 하나의 세계적 장르로 부상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되며, 이에 대한 현대적 분석도 가속화 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 gm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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